"생각의 탄생" - 될놈이론의 이론적 분석

Bookmark and Share
PENTAX Corporation | PENTAX Optio S5z | Normal program | Center-weighted average | 1/100sec | F/2.6 | 0.00 EV | 5.8mm | ISO-200 | Off Compulsory

지난 2007년, 중국에 있는 무역 업체로 취직해서 떠나는 친구를 만났다.
이렇게 가고 나면 한참이나 못 볼 거라는 생각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서른 즈음의 우리가 내린 나름의 결정과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한참이나 아쉬운 순간순간을 흘려보내고, 나는 막차 기차를 타고 다시 대전으로 내려와야 했다.
그렇게 떠나보내려는데, 그 친구가 불쑥 들고 있던 크고 두꺼운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생각의 탄생'

마치 전공 원서 책처럼, 크기는 큰데 생각보다 가벼운 이 책을 얼떨결에 받아 들었었는데.
그 친구 왈,

"이거 내가 보니 어려워서 잘 모르겠더라. 그래도 과학하는 니가 보면 좀 안 낫겠나.."

사실 내가 본다고 딱히 알만 할 것 같지 않은데...
어쨌든 떠나는 친구가 준 책이었고, 나는 그 마음을 받는게 도리였다.


그렇게 2007년이 가고, 2008년이 되었으나, 나는 그 동안 쌓아둔 책들도 거의 못 읽고 정신없이 바쁘게 보냈다.

그리고 2009년.
이러다가 책 한 권 못 읽고 한 해를 보내고,
다시 무식한 놈 소리를 들을 거 같아서, 그 동안 못 읽었던 책을 폈다.

'생각의 탄생'
- 친구야 미안하다, 이제서야 이 책을 펴본다.

이 책은 천재들이 어떤 방법으로 *생각*을 했던가 하는 것을 분석한 내용이다.
천재들이 꼭 과학과 같은 분야에만 있는게 아니고,
글을 쓰는 분야에도, 사회학에도, 그리고 예술분야까지.
그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관찰, 형상화, 추상화, 패턴, 유추, 감정이입, 모형, 변형...

생각을 하는 것은 단순히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옅게 펼쳐져 있는 구름을 뭉쳐서 눈사람을 만드는 듯한 것이 생각의 과정이라 했다.
그런 과정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눈사람을 만들 수가 있는데,
그럴 때 사용하는 것이 저러한 방법이 있다고 소개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저런 생각의 방법들이 따로따로 놀고, 나름의 결과물로서도 의미가 있지만,
결국엔 하나로 통합되어 같은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레오나르드 다 빈치 같은 사람은 예술에도 재능이 있었지만, 과학에서도 천재였다.

우리 연구실 동료들 사이에 유행하는 이론이 하나 있다.

"될놈이론"

말 그대로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된다는 이야기인데.
무슨 운명론적인 이야기 같이 들리는, 자조섞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카이스트에 온다는 사람이라면 나름 세상에서 바라볼 때는
"똑똑하고 성실해서 세상에 내 놓으면 뭐라도 다 될 수 있는 것"
처럼 보여지지만...
사실 1등을 100명 모아두면, 다시 1등부터 100등까지 생기듯이,
이 곳 역시 똑똑한 사람들이 모였다고들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더 똑똑한 사람과 평범한 사람으로 나뉜다.

이런 사람들끼리 하는 시쳇말 중에 '될놈이론'이 있다.
예를 들어서,
수학경시대회에서 매번 1등을 하던 녀석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물리경시대회에 출전하는 여자애 하나가 굉장히 이쁘다는 소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물리경시대회로 출전대회를 갑자기 바꾸더니,
급기야 물리경시대회에서도 1등을 했다고 한다.
(이런 뭐야... 새가 빠지게-혀가 빠지도록- 물리경시대회 준비한 애들은 뭐냐...)
그리고 과학고를 나와서 카이스트에 진학했는데 공학에 별로 재미를 못 붙이고 (사실 재미는 못 붙여도 성적은 후덜덜)
의사나 해야겠다면서 의대로 편입을 해서 의과를 졸업하고 의사면허까지 받았는데,
돌연 사시를 해야겠다면서 사시를 공부하더니 2년에만에 사시 패스를 한 친구...

이런 애들이 바로 '될놈이론'의 전형적인 예제다.
이런 애들을 따라간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뱁새 가랑이 찢어지는 꼴이 아닐 수가 없다.
결국 될 놈은 뭘 해도 된다는 이론...

이러한 될놈이론이 정말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바로 이 '생각의 탄생'이라는 책이 이론적으로 또는 통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는 거다.

이러한 사람들의 생각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다.
그 생각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배치하고, 모양을 바꾸면서,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희한한 방법으로 생각을 구체화시키고,
그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뽑아낸다.
그러기에 천재겠지...


물론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안 될 놈'들은 그러면 찌그러져 있어야만 하는건 아닐테다.
그래서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부분이 바로 '교육'에 대한 것인데,
교육으로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획일화된 교육이 문제라고 다들 말들을 하고, 나름 획일화된 교육을 탈피하자고 말들을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하지만 이 책이 제시하는 것을 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이지만, 어떻게 씹고 소화를 하는가 - 즉 어떤 방식으로 같은 사물을 또는 같은 경험을 재해석하느냐 - 에 따라,
생각을 어떻게 하면 더 의미 있게, 창조적으로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결국,
사람은 생각을 해야 한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이렇게 저렇게 다양하게 푸는 연습이 바로 '창조성'의 원초적인 개발방법이라 생각이 든다.


----

다음은 책에서 재밌게 읽으면서 줄 쳐 놓은 부분들.

- 작가이지 화가인 폴 호건에 따르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내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묘사하고 있는 세계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 추상화는 다른 모든 분야의 사람들에게 어려운 일이다. 마크 트웨인이나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은 편집자에게 원고가 지나치게 길어져서 유감이라는 편지를 썻따. 그들은 한결같이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길이가 절반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윈스턴 처칠은 5분짜리 얘깃거리를 가지고 하루종일 떠들 수는 있지만, 말할 시간이 5분 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것 위해서 하루동안 꼬박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시인 에드윈 A. 로빈슨은 젋어서 짧은 시를 쓰다가 점점 긴 시를 썼는데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나이가 예순이 넘고 보니 시를 짧게 쓰는 것이 너무 힘들구나." 이처럼 글쓰기의 본질은 종이 위에 단어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골라내고 버리는 데 있다.
- "저는 열여섯 번이나 고쳐 씁니다." 스젠트 기요르기는 그 비결을 자기 식으로 응용했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하면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을 모두 다 씁니다. 그런 다음 그 종이를 치우죠. 그러다가 한 달 후에 처음 쓴 것은 보지 않고 다시 씁니다. 두번째 글이 첫번째 글과 다르다면 처음부터 다시 씁니다. 그렇게 해서 열 여섯 번 쯤 쓰게 되는데, 글이 더 이상 달라지지 않을 때까지 쓰는 셈이죠."
- 필립 데이비스와 로이벤 허시는 "수학의 목표는 무질서가 지배하던 곳에 질서를 세우고 혼잡과 소란에서 구조와 불변성을 이끌어내는 데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 "문제 자체가 제대로 설정되어 있다면 해답의 절반 이상은 건진 것이다"라는 문구는 거의 모든 과학자들에게 금언으로 여겨지고 있다.
- "우리는 디지털과 물리학 세계의 가장 좋은 점만 같이 묶으려 했다. 우리들이 중점으로 두는 것은 아이들에게 완성된 장난감을 주는게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제작할 수 있는 부속품을 공급하는 일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장난감 놀이를 통해 디자이너나 발명가가 되기를 바란다.
- 우리는 이 교훈이 항상 한 개의 정답만을 요구하는 과학부분에도 적용되기를 바란다. 화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주기표를 가르치는 효과적인 방법은 다른 누군가가 만들어낸 구조를 단순 암기하도록 하지 말고 자신들만의 주기표를 고안하게 만들라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자신들만의 고유한 정리증명법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교사가 선호하는 방법이나 책에 나와 있는 것들을 따라가기만 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 불완전한 세속의 증거를 참고하여 신을 인정해야 할 때, 우리는 모두 장애인이 될 수 밖에 없다.
- 그녀(헬렌켈러)의 방법과 드 블로리나 플랑크의 방법을 비교해보면 우리를 구속하거나 자유롭게 하는 것은 감각이 아닌 유추를 통해서 미지의 것들을 조명할 수 있는 능력의 유무임을 알게 된다. 학습은 유추에 의존한다.
- 브룩스의 말에 따르면, "요즘의 장난감은 상상의 여지를 많이 남겨놓지 않는다. 컴퓨터칩이 사고를 대신해 준다. 캐릭터들은 이미 정해져있고, 모든 인형에는 필수 악세서리들이 다 딸려나온다"라는 것이다. 모두가 창의성을 위축시키는 것들이다.
- 고대 중국에는 다음과 같은 격언이 전해 내려온다. "나는 듣고 잊는다. 나는 보고 기억한다. 나는 행하고 이해한다." 그러므로 그냥 앉아 있지만 말라. 원숭이처럼 움직이다 보면 자신이 어느새 문제를 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오직 몸만이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정지궤도위성의 개념을 생각해낸 SF작가 아서 C. 클라크는 "오늘날 사람들이 컴퓨터화면을 들여다보는 교육만 받고 있을 뿐 진짜 금속을 만져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태도는 미래에 재앙을 몰고 올 것이다"라고 우려하고 있다.
- 과학이란 가상세계나 가상세계의 조각들을 끊임없이 고안해내고, 그것을 실제 세계와 맞춰보는 놀이라고 할 수 있다.
- 교육의 목표는 이해에 있지, 단순한 지식의 습득에 있는 것이 아니다.
- 과거를 돌아보면 예술이 융성하던 시절에 수학이나 과학, 기술도 꽃을 활짝 피웠다. 미래에도 그것들은 흥망을 같이 할 것이다.
- 대가(大家)는 어디에서나 대가입니다.



저작자 표시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저작자표시 2.0 대한민국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정리하지 않은 잔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인만씨, 농담도 잘 하시네!  (4) 2009.08.10
한국의 명수필 1  (0) 2009.07.02
책 산 거 자랑  (4) 2009.03.20
"생각의 탄생" - 될놈이론의 이론적 분석  (8) 2009.03.19
추천 블로그  (0) 2009.02.17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  (0) 2009.01.11
'빨갱이' 단어 없는 국어사전  (0) 2008.12.15
Trackback 0 Comment 8
  1. Favicon of http://allthatssumm.tistory.com BlogIcon 찰랑소녀 2009.03.19 14:1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이 책
    넘 좋아보여서 08년에 샀는데, 몇장 읽고 내 책상 위에서 벌써 뒹굴 뒹굴 1년째...
    ㅎㅎ 다른 책들에 밀려 아직도 못 읽고 있는데, 지금 읽는 2권 끝내고
    나도 언넝 착수해야겠넹.
    될놈이론 나도 한번 보자..ㅋㅋ

    • Favicon of http://5bpa.tistory.com BlogIcon 장작가 2009.03.19 16:07 신고 address edit & del

      이 책 가지고 계시군요. 저처럼 밀려서 밀려서 아직 안 보신듯 한데...
      어려운 내용은 슥삭 넘아가고 알맹이만 쏙 집어 먹으면 생각보다 술술 읽히는 책이던데요.
      꼭 한번 읽어보세요.

  2. Favicon of http://yooseongae.tistory.com BlogIcon hopinu 2009.03.30 23:2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될놈이론이라, 재밌네요. ㅎㅎㅎ 말로만 듣던 엄친아, 엄친딸들이 바로 그 될놈이론의 주인공인가.. 암튼 여러사람 마주치다보면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 많은것 같아요.

    • Favicon of http://5bpa.tistory.com BlogIcon 장작가 2009.03.31 09:46 신고 address edit & del

      맞아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을 살아가더라구요.
      그런 다양한 사람들을 같은 틀로 끼워맞추려는 우리 나라의 현재 세태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on_lord_ly BlogIcon 서놔선화 2009.06.03 13:16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저두 읽으면서 이런생각했습니다.
    내가 이책의 모든 내용이 이해가 간다면 나도 천재가 되는건 어렵지 않겠구나~!ㅎㅎ
    하지만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하는 그 방법론 자체에서 반절은 너무 당연한것들, 반절은 무슨말하는건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저로서 결코 천재가 될수 없는건가~! 하고 말이죠ㅎㅎ
    저는 근데 '될놈이론'보다는 '된놈이론'이라고 말하고 싶은데요~
    이미 된놈들의 생각하는 습관들을 모아서 편찬한거니까...ㅎㅎ

    • Favicon of http://5bpa.tistory.com BlogIcon 장작가 2009.06.03 22:17 신고 address edit & del

      아...
      그렇네요. "된놈이론"이 더 맞는 말 같기도 합니다. ^^

      세상에 몇몇의 천재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천재가 아닌 사람들인데 말이죠. 세상이 천재 위주로 돌아가는게 싫긴 합니다.

      사실 천재가 아닌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가 되어야되는데. 몇몇 심성 고약한 천재들이 자기들만 잘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만들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듯 하네요.

  4. 나그네 2010.05.10 14:5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느즈막히 될놈이론이란 것을 알게되었는데, 좋은 글 발견했네요 ㅎㅎ
    출처 남기고 퍼가겠습니다~^^

    • Favicon of http://5bpa.tistory.com BlogIcon 장작가 2010.05.10 22:44 신고 address edit & del

      예전에 쓴 글이라 논점과 근거가 좀 어색합니다만. 될놈이론은 정말 맞는 말이긴 합니다. ^^

prev 1 ··· 108 109 110 111 112 113 114 115 116 ··· 348 next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