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후레자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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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일째

<무심천, 미호천, 금강. 흘러야 할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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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을 따라 가는 순례길에서 만난 한 할머니.
순례단에게 다가와 '평화를 빕니다'라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바삐 걸음을 옮기셨습니다.
순례단에게 보내는 '평화의 인사'가 아니라,
생명의 강을 지키고자 하는 평화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무심천에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오늘 순례단의 발걸음이 무심천에 이르렀습니다.
김포 애기봉을 출발한지 82일.
금강 하구둑을 출발한지 12일만에 청주시내에 이르러 금강구간 마무리 행사를 진행하였습니다.
이제 다시 물길이 넘지 못하는 한남금북정맥을 넘어
달래강으로 발길을 이어 갈 것이며,
남한강 - 한강으로 이어지는 순례가 계속될 예정입니다.

오늘 순례단의 하루는 미호천을 가로지르는 팔결교에서, 미호천의 탁한 물길을 보며,
“하루 순례길 참여자분들이 우리 순례단의 큰 기쁨이자, 큰 힘입니다.
이렇게 순례의 마음이 모아지고,
생명의 근원을 찾고자 하는 울림이 모아지면 한반도 운하는 백지화 될 것입니다.
여러분과 함께하는 우리의 기도걸음으로 한반도 운하 계획을 지워나갑니다.
하늘도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함께하는 길입니다”
라는 이필완 목사님의 기도로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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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순례단은 외평동과 정북동 제방길을 따라 미호천을 내려와,
무심천 합수부에서 청주 방향 이동하였고,
무심천을 가로지르는 충북선을 지나, 송천교에서 점심식사를 하였고,
이후 무신천 우안(하류에서 상류 방향 기준)을 따라 이동하여,
꽃다리 소나무공원에서 도착하는 순례 일정을 진행하였습니다.
이 지점에서 금강운하 구간을 마무리하였으며,
청주시민과 함께하는 순례단 맞이 법회 및 문화행사에 참석하였습니다.



<어머니 앞에 나는 후레자식입니다>

미호천을 따라 너른 들판에 사람 하나 없었습니다.
요즘이 한창 농번기라 하지만 들녘에서 일을 하시는 어르신들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만큼 지역에 젊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순례길에서 들녘에서 일을 하시는 분들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렇듯이 순례단이 길을 떠난지 몇분 되지 않아 넓은 들녘에서 혼자 계시는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멀리서 경운기 소리와 차소리가 들리고, 앞으로는 미호천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곳 팔결교 인근은 농가가 없으니,
아마도 멀리서 이른 아침부터 점심끼니를 준비하셔서 일을 나오셨는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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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로 나간 자제들 대신에 어느덧 논과 밭 농사일이 자식이 된지 오래입니다.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에서 하루 종일 호미질 하고 계실 어머니.
닳을대로 닳은 손끝으로 호미 하나 잡고 한해 농사를 준비하는 어머니 모습을 보니 마음이 심란해집니다.

오늘 금강구간을 마무리 하는 행사에서 이현주 목사님은 “후레자식”이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 말을 그대로 옮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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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 팔결교에서 잤습니다.
아침에 세수할 곳이 없어 개울에 나갔는데, 가보니 손을 담그기도 두려웠습니다.
세수를 못하고 오다가 무심천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청주시민 덕분에 그 물에 세수를 하였습니다.
손을 담그기 힘들 정도의 미호천을 보면서 나 자신을 보았습니다.
부모 은공을 모르고, 배신하고 하면 불효자식 소리 듣습니다.
나는 불효자식도 아닙니다.
은공을 갚기는 커녕 함부로 대하고 망나니 짓을 하는 후레자식입니다.
내가 후레자식입니다.
오늘 아침에 분명히 보았습니다.
같이 길을 가고 있는 순례단도 모두 후레자식입니다.
세상 사람 모두 후레자식입니다.
인간의 얼굴을 가진 우리 모두가 후레자식입니다.
자기가 후레자식인줄 아는 후레자식이 있고, 그것도 모르는 진짜 후레자식도 있습니다.
이제야 내가 후레자식인 줄 알았습니다.
앞으로 지금까지의 일을 계속하면 안되겠습니다.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깊이 고민하고, 성찰한 사람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기 힘들다 했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기존 삶을 뉘우치고, 새롭게 가야 한다’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것이고, 그 수는 줄지 않을 것입니다.”
(이현주목사님. 2008.5.3. 청주맞이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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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면서 만났던 어머니.
한밤중에도 자식의 마른 기침 소리에 잠을 깨신다는 어머니.
그 어머니의 마음처럼,
우리 강산은 우리를 보듬어 안고 터전을 내어준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닳디 닳은 어머니 손끝에 마음이 아프고,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훼손되는 어머니 모습이 아픕니다.

우리가 받은 이 크고도 깊은 은혜를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요.



<정북토성에서 미호천의 세월을 봅니다>

그동안의 순례 방향과 다르게 미호천을 따라 하류로 걸어가다보면,
팔결교에서 약 3km 지점인 미호천과 무심천의 합류부 까치내 인근에서 ‘정북토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청주에서 중요하게 살펴야 하는 과거 성곽 중 하나가 ‘상단산성’과 ‘정북토성’이라 합니다.
날 좋은 날에 정북토성에서 보면 청주의 ‘상당산성’이 윤곽이 보이는데,
성곽은 한남금북정맥의 능선을 따라 구불 구불 위치하고 있어,
한강수계와 금강수계의 구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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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북토성은 멀리 미호천 제방길을 따라가면서 보면 까치내 인근에서 마치 네모난 구릉처럼 보이는데,
그동안 보아왔던 산중의 성곽이 아니라 평야에 만들어진 성곽이라 매우 특이한 모습이었습니다.
축조시기는 정확히 파악이 되지 않으나,
발굴조사를 하였던 충북대 등의 자료에 의하면
출토 유물과 서문지의 목탄 방사성탄소연대 측정 결과 백제 한성시대와 연결된다 합니다.

지난 1999년부터 사적 415호로 지정관리되고 있으며,
전체 길이 675m, 높이 2.7m~4.5m의 규모라 합니다.
정북토성은 국내의 평지 성중에서도 가장 원형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합니다.
현재 충청북도 기념물에서 ‘사적’으로 지정되어 관리 중이라 하는데,
토성 안에는 원래 20여 가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모두 이주하였고 현재는 잔디만 있는 ‘빈 성’이 되었습니다.
이 정북토성은 풍납토성등과 함께 초기 백제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곳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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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과거 기록에는 후삼국시대에 상당산성과 정북토성에서 견휜과 궁예가 겨루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영조 20년(1744)에 상당산성의 승장(僧長)으로 있던 영휴(靈休)가 쓴 《상당산성고금사적기(上黨山城古今事蹟記)》에 "신라 말에 궁예(弓裔)가 양길(梁吉)의 부하로 있다가 군사를 나누어 동쪽을 공략할 때에 지금의 상당산성을 쌓고 근거지로 삼았다. 후에 후백제의 견훤이 상당산성을 빼앗고, 상당산성의 서문 바깥 까치내[鵲江]의 곁에 토성을 쌓고 창고를 지어 부세(賦稅)를 거두어 쌓아 두었다가 상당산성 안으로 운반해 들였다. 이러한 이유로 후세 사람들이 시로 읊기를 들판의 토성은 백제 때를 지나오고, 암자의 금부처는 삼한(三韓) 때를 거쳤다고 하였다.. <두산백과사전 인용>)


당시 백제가 마한 세력을 누르고 역사의 주인으로 등장한 시기에도 이곳은 곡창지대로 이용되었다 하는데,
그와 관련된 정북토성을 보노라면 매우 독특한 축적기술로
무려 2천여년의 세월을 견디어왔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정말 감탄만 나올 뿐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가 시멘트 콘크리트 구조물이 일색인데,
이런 자재가 없이도 2천년을 여유롭게 지내었으며,
미호천을 따라 성쇠를 거듭하였을 우리 역사의 증인이라 생각하니 놀랍기만 합니다.

정북토성이 만들어질 시기의 미호천의 모습은 어떠했을지 궁금합니다.
수차례 밝힌 바와 같이 강을 따라 만들어진 우리의 역사.
그곳에 선조로부터 우리에 이르까지 전달되는 무수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 많은 이야기를 운하가 아닌 미호천과 무심천,
그리고 정북토성의 이름으로 올곧게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심천, 정하동 마애불>

정북토성을 지나 무심천과 미호천이 만나는 합수머리에서 멀지 않은 지점에 충북선이 지나는 철교가 있습니다.
철교밑에서 더위를 피하기 위한 짧은 시간의 휴식에
일부 성직자와 참여자는 맑은 무심천물에 발을 걷고 들어가 즐거워하시네요.
여기서는 휴식시간보다 더 짧은 충북민예총 관계자분들의 소리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충북선 철교를 지나 점심 예정지인 심천 송천교 인근 정하동에 도착하면 ‘마애비로자나불’이 있습니다.
변변한 안내판이 없는 관계로 차량을 이용하면 ‘저게 뭔가’ 싶은 찰라의 순간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화엄사상과 관련이 되어 있는 비로자나불은
‘오른손으로 왼손 검지를 감싸 안은 지권인의 손 모양’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통일 신라의 마애불 양식을 계승한 고려 초 작품이라 합니다.
우리나라 유일의 ‘마애비로자나불’이라고 설명하시네요.
보전상태가 양호한 부처님 입석입니다.
다만, 이 지역의 과거 지형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어
왜 이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몰라 갑갑하였습니다.
참고로 정북토성이 있던 정북동, 여기 정하동, 정상동 등은 모두 우물과 관련한 이름이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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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순례길에서 무심천의 명칭 유래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청주의 동서를 가르며 남북으로 흐르는 하천이 무심천입니다.
무심천은 도시 하천의 복원과 관련하여 종종 인용되는 성공적인 사례입니다.

무심천의 이름의 근거 중 가장 설득력 있는 설은
고려 중기의 고승,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1178~1234)과 관련되어 있다 합니다.
혜심 스님은 무심천면 사뇌사에서 안거를 하셨는데, 혜심스님이 ‘무심론자’라 합니다.
이와 관련한 설명을 찾아보니
"무심(無心)이라 함은 마음을 허공처럼 비우게 하여 놓은 상태이지만
비우게 한다는 그 마음도 없애야 하며,
다시 나아가서 비우게 한다는 그 마음을 없애는 그것조차도 또한 없애야 한다.
그는 마음가짐에 있어 무엇보다 '무심' 을 중히 여긴 것이니 이 무심이야말로 참다운 마음이라 한다."
고 되어 있었습니다. <국사편찬위 간, 한국사 7권>

무심천과 지역의 관계에 대한 설명을 하던
염유 사무처장은 이 외에도 무심천 이름을 설명하는 설은 많으나,
정확한 유래는 아무도 모른다 합니다.
다만 청주시민은 무심천의 유래가 무엇이든 무심천을 사랑한다고 자랑하더군요.
지역을 대표하는 하천이 물맑게 흐른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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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천에 다달아 송천교 밑에서 점심식사를 진행한 순레단은
오후 길을 걸어 꽃다리 소나무 공원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금강 마지막 구간에 대한 순례를 종료하였습니다.
순례단 맞이 행사가 분주한 상황에서도
“세상에 별난 것은 없습니다.
밥 먹을 때 잘 먹고, 강을 건널 때 잘 건너면 되지 다른 생각은 별로 없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나날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만일 방해꾼이 있다면 그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살아가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라는 김민해 목사님의 기도말로 종료되었습니다..



<무심천에서 진행된 ‘종교인 순례 환영행사’>

오늘 청주시민이 자랑하는 무심천에서 금강 구간을 마무리하며,
‘청주시민과 함께하는 순례단 맞이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대한불교조계종제5교구 본사 법주사와 운하백지화충북도민행동 주최로 진행되었으며,
충주청원조계종주지협의회에서 주관한 행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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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환영법회에서는 삼귀의와 반야심경 낭독,
“모든 종교인들이 힘을 합쳐 운하를 저지해야 한다.
국토와 자연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는 설곡스님과 ‘오늘 수십년만에 처음으로 미호천을 따라 걸었기에 행복하다.
수십년 만에 동심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하지 않고 운하를 건설하지 않으면 하늘처럼 받들겠다’
는 강태재 대표의 환영사,
원행스님의 법주사 대중의 입장,
가벼워야 하리 가난한 내 영혼 
저 하늘 빛나는 나의 별에 이르기 위해
비우고 덜어내 아 가벼워야 하리
흐린 눈으로 가지 못하리
미움과 욕망의 마음으론 더욱 못가리
날마다 뜨거운 눈물로 씻어 맑아져야 하리
저 하늘 맑은 별로 나 돌아가기 위해
비우고 덜어내 아 가벼워야 하리’

라는 “나의 별에 이르는 길”을 노래하신 연제식 신부님,
‘후레자식’을 고백하신 이현주 목사님의 말씀에 이어 순례단 소개가 이어졌으며,
법주사, 청주청원조계종주지협의회, 운하백지화충북도민행동의 운하반대 공동선언문 낭독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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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문화행사로 진행된 2부에서는 조동언 선생님의 판소리 공연,
선율21의 25현가야금 연주, 새울예술단의 모듬북 공연이 진행되었습니다.
오늘의 행사는 참가자 전체가 함께하는 ‘생명의 강을 지키기 위한 기원 솟대 세우기’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순례길에 종종 발걸음을 함께 하고 있는 이선진(순천대 산림자원학과) 학생은 “강과 만나고 싶었고, 순례단이 부럽기도 하거니와 함께 걷고 싶었다”고 합니다. 순례길과 관련한 여러 이야기를 하시면서 “현재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우선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일입니다. 결국 출발은 자기정화가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학생으로서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지역하천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합니다. 운하라는 위협에 놓인 강을 살리는 길. 그 길은 지역의 소하천을 살리는 노력과 같이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김태중 목사(예장통합)님은 “운하 자체는 시대 착오적 발상”이라며, “만일 이명박 정부가 힘의 우열로 맞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드리고 싶습니다. 운하를 찬성하는 사람은 이익이 있어서입니다. 하지만 반대하는 사람은 더 손해가 있을 지언정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힘입니다. 결국 이러한 반향에 위정자들은 궁지에 몰릴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목사님은 여러 말씀과 함께 “운하를 건설하는 사람은 나의 뒷통수 일 수 있습니다. 다만 말릴 뿐 미움을 갖지 말기를 부탁한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운하 계획의 백지화를 위한 노력이 사람에 대한 미움으로 나아가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

오늘 순례단에서는 단장이신 이필완 목사 / 김민해 목사 / 이현주 목사 / 문정현 신부님 / 김규봉 신부 / 홍현두 교무 / 수경 스님 / 연관 스님 / 지관 스님 / 이원규 시인이 참여하였습니다.

하루 순례길 동참자로는 장경훈(화성) / 김정휴, 송재기(푸른꿈고등학교) / 오민애(청주) / 전성희(청주) / 신유숙(충북여성민우회) / 이선진(순천) /  신경자 외 2명(증평생명평화결사) / 현진 스님 외 4명(청주 관음사) / 주재균 외 3명(여주대학) / 박미숙(예술공장두례) / 최장희 외 1명(한밭레츠) / 강태재 외 4명(충북참여연대) / 윤성희(청주) / 최시영 외 1명(흙살림) / 허원 외 17명(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 오은수 미카엘라 수녀 외 6명(안동교구) 등이 참여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청주시민과 함께하는 생명평화순례단 맞이행사에 많은 청주지역 시민들과 사회단체 관계자분들이 참여하였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진행순례팀에는 이상배(진행팀장) / 조항우(진행) / 강병규(진행) / 김희흔(진행) / 김창완(진행) / 강신화(진행) / 명계환(기수, 기록) / 김현순(동영상) / 이희섭(동영상) / 김선희(사진)님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일정 안내>

● 제83일 / 5월 4일(일)
보강천합수점(시작점) - 증평대교아래(중식) - 사리면삼화교(도착점) 이후 증평지역 간담회

● 제84일 / 5월 5일(월)
모래재(시작점) - 대사삼거리(중식) - 달천괴강교(도착점) 이후 괴산지역 간담회

● 제85일 / 5월 6일(화)
휴식 및 구간 / 개인 정비

* 정확한 출발 장소 및 시간은 도보순례단에게 전화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 청주충북환경연합의 염우 사무처장이 길안내와 설명을 후원해주셨습니다.
* 대한불교수련원에서 숙박장소를 후원해주셨습니다.

* 도보순례 1일 참가 일정과 수칙은 www.saveriver.org 공지사항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2008. 5. 3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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